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혼자 밥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

혼자 밥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


혼자 밥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

젓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,
김이 살포시 올라오는 국물의 향기.
혼자 밥을 먹는 그 순간,
완전한 고요 속에서 느껴지는
조용한 평화가 있다.

젊었을 적 식사 시간은 좀처럼 조용하지 않았다.
나는 딸이었고, 아내였으며, 엄마였다.
저녁 식탁은 늘 사람들의 말소리, 접시 부딪히는 소리,
그리고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.

누군가는 밥을 더 달라 말하고,
누군가는 웃으며 음식을 나눴다.
그렇게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이
하루의 피곤함을 잊게 해주던 시절이었다.

이제 쉰이 넘은 나는 혼자 밥을 먹는다.
집 안의 분위기도 그에 따라 변했다.

식탁은 작아졌고,
아이들은 각자의 삶을 살기 위해 떠났다.
그때는 낯설게만 느껴지던 이 고요함이
이제는 묘하게 위안이 되는 존재가 되었다.

나는 오늘도 간단한 한 그릇 음식을 앞에 두고
식탁에 앉는다.
그리고 대화가 시작된다.

다른 사람과가 아닌,
나 자신과의 대화.


“오늘 하루 어땠어?”

나는 조용히, 마음속으로 나에게 묻는다.
그리고 솔직하게 대답한다.

“조금 피곤했어.”
혹은, “좋은 하루였지.”
가끔은, “오늘은 누군가가 좀 그리워.”

내 대답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지만
이 조용한 독백은
어느 대화보다 더 진실하고 깊다.

다른 이의 부재 속에서
나는 나의 동반자가 되어간다.


기억이 밥상에 함께 앉는다

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을 떠올리며
미역국을 끓인다.
그 시절 그 맛을 최대한 비슷하게 재현해본다.

그리고 한 숟갈을 떠 넣는 순간,
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.

요리하실 때의 어머니 손길,
부드럽게 흥얼거리던 그녀의 목소리가
하나 둘 내 안에 되살아난다.

한 입, 한 입마다
내가 어떤 아이였고,
어떤 사람으로 성장했는지를 떠오르게 한다.

가끔은 미소 짓고,
가끔은 추억의 쓴맛에 멈춰서기도 한다.
하지만 그 모든 순간이
음식 이상의 무언가로 나를 안아준다.


서두르지 않고, 조급하지 않은 시간

삼십 대의 나는 늘 바빴다.
아이들 챙기고, 가족을 먹이고 나서야
내 밥을 먹곤 했다.

그때의 식사는
의무였고 습관이었다.

지금은 조금 다르다.
초를 켜고,
따뜻한 차를 따르며
그저 앉는다.

먹기 위해서가 아니라,
존재하기 위해서.

이제는 누구에게도 보일 필요가 없다.
누군가의 시선도 없다.

오직 나, 지금 이 순간.


혼자 앉은 식탁, 많은 이야기가 담긴 공간

이곳에서 나는 생각하고,
돌아보고,
스스로를 용서한다.

다른 이가 알아주지 않아도
작은 성취를 스스로 칭찬하고,
때때로 웃고,
어쩔 땐 눈물도 흘린다.

그리고 숨을 고른다.

이건 외로움이 아니다.
이건 나와 함께하는 시간,
바로 존재함이다.

그 안에서 나는
지금의 나,
한때의 나,
그 둘을 품고 있는 부드럽고 강한 내 목소리를 듣는다.


혼자 먹는 식사가
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다.

오히려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.

이 평화로운 식사 속에서
나는 내가 미처 몰랐던 보물을 하나 발견했다.

나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주는 대화.